경영하는 디자이너, 대한민국 벤처 1위 기업의 창업자
김봉진:기업인
출생 : 1976년 10월 10일
소속 : 우아한 형제들
대표 학력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경력: 2011.~ 우아한 형제들 대표
수상: 2017. 남녀고용평등 우수기업 대통령 표창 우아한형제들
수상 사이트: 페이스북
2010년 3천만 원의 자본금으로 시작한 스타트업이 현재는 기업가치 3조 원을 넘는 유니콘으로 성장했다. 우리나라 배달음식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기업 ‘우아한 형제들’의 이야기다.
이 회사의 국내 대표 배달앱 배달의 민족을 지금의 위치로 일군 인물은 ‘경영하는 디자이너’로 정의할 수 있는 김봉진 우아한 형제들 대표(이하 직함 생략)다
그는 창업 실패를 딛고 일어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 기어이,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디자인에서의 강점을 살려 앱을 성공시킨 의지의 인물로 평가된다.
공부보다는 미술에 관심이 있던 인물
1976년 10월 10일 전라남도 완도에서 태어난 김봉진의 유년기는 그다지 유복하지 않았다.
공부에도 취미가 없어, 공업고등학교에 재학 시절 성적은 꼴찌 수준이었고 학업이 맞지 않아 학교에 안 나가기도 했다.
대신 어릴 때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집안 사정으로 가고 싶었던 미술학원에도 다니지 못했으며,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본래 뜻을 두고 있던 미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부친을 설득해 디자인 학원을 다니며 입시를 준비했고, 다른 대학들보다 실기의 비중이 높은 서울예술대학 실내디자인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그는 주로 광고, IT 분야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다.
이모션, 네오위즈 등의 회사를 거치며 커리어를 쌓은 그는 2008년에 이르러 처음으로 창업에 도전하게 된다.
처음 도전한 분야는 ‘가구’였다.
수제 디자인 가구 사업으로 창업에 도전하면서, 완성도 높은 디자인으로 매체에도 몇 차례 소개되면서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높은 단가와 낮은 사업성으로 인해 첫 번째 사업은 결과적으로 실패를 거두고 만다.
첫 번째 사업이 김봉진에게 안겨준 것은 2억 원이라는 막대한 빚이었다.
실패를 극복, 재창업 후 다시 퇴사
폐업 후 그는 낮에는 NHN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밤에는 다른 디자인 시안 일감을 수주해 일하며 빚을 갚아갔다.
그리고 빚을 채 다 갚기도 전인 2010년, 다시금 그는 창업에 도전했다.
이번에는 자신이 커리어를 쌓은 IT 분야에 친화적인 사업을 비즈니스 모델로 삼았다.
IT 분야의 전문 디자이너 5명과 세운 회사는 UX 컨설팅 에이전시인 ‘플러스 엑스’였다.
회사의 처음 시작은 IT 전문가였던 친형들과의 공동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형들이 앱을 만들면 플러스 엑스가 디자인을 입히는 형태였다.
하지만 그는 이 과정에서 보다 자신의 능력을 갈고닦고자 했다.
플러스 엑스를 공동 창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김봉진은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그리고 국민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다시 한번 디자인을 배우기 시작했다.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시각디자인 석사과정을 밟던 와중에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폰 혁명이 찾아오고, 김봉진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전개해 나가게 된다.
전단지를 앱으로 만들어 성공
스마트폰 디바이스 못지않게 앱 서비스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가 높아지는 때를 노려, 김봉진은 다양한 앱 서비스를 내놓으며 시장성을 테스트했다.
그는 개인사업자로 스마트폰으로 영수증을 찍으면 자동으로 입력이 되는 서비스, 오픈마켓 셀러를 겨냥한 주문량 파악 서비스 등 다양한 앱 서비스를 시도했다.
그 와중에 김봉진이 주목한 분야는 ‘전화번호’였다.
스마트폰용 전화번호부 앱을 만들고자 했으나, 수익성과 확장성, DB 구축에 어려움을 느끼고, 전화번호를 제공하는 다른 형태의 앱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다른 곳은 배달음식 전화번호, 즉 ‘전단지(선전지)’였다.
그는 배달의 민족의 초창기 버전에 해당하는 전단지 앱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앱 디자인은 김봉진이, 클라이언트 개발은 그의 셋째 형이 담당했다.
당시 배달의 민족은 최초의 전단지, 배달 앱은 아니었는데, 이미 앱이 출시된 시점에 배달통, 배달 114 등의 경쟁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가 직접 길거리를 다니며 모은 5만 개의 전단지 DB, 그리고 매력적인 B급 정서의 디자인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있었다.
배달의 민족은 그가 내놓은 다른 어떤 앱보다도 큰 성공을 거뒀다.
직접 주문이 가능한 앱으로 발전
양대 앱 마켓 다운로드 순위에 자신의 앱 이름이 올라갔고, 가능성을 본 투자자들이 몰렸다. 그리고 김봉진은 여기에 배팅했다.
두 형제들이 운영하던 개인사업체 ‘우아한 형제들’을 2011년 법인으로 전환하고, 배달의 민족 서비스를 확장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최초에는 전단지라는 기존의 서비스 방식을 유지한 채, 지역 매니저를 두고 음식점의 광고를 유치하는 영업 중심의 사업모델을 구상했다.
하지만 곧 직접 배달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형태로 서비스 방향을 다시 설정했으며, 이를 통해 회사는 성장할 수 있었다.
서비스 초기에는 배달의 민족에 대한 비판도 많았다.
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면 직원들이 해당 가게로 전화를 대리해서 거는 시스템으로 운영됐기에, 이를 두고 기술적 진보가 모자란 서비스라는 비판을 감수해야만 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골목상권의 파이를 나눠먹는 ‘기생 서비스’라는 비난도 빗발쳤다.
사업의 확장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고, 이를 통해 주요 미디어를 도배하다시피 한 마케팅 전략도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배달의 민족은 이 모든 비판을 딛고 성장해, 경쟁이 치열해진 배달앱 시장 1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흑자전환 성공, 이어지는 성장
갈수록 거세지는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 대처하기 위해, 우아한 형제들은 배달의 민족의 바로 결제 수수료를 2015년 8월 전면적으로 폐지했다.
바로 결제 수수료는 당시 회사 매출의 30%를 차지하는 주요 사업모델이었으며, 결제 시스템 구축 및 운영에 지속적인 비용이 투입되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김봉진이 지속적으로 이야기해 온 상생, 업주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회사 차원에서도 단기 수익보다는 이용자 확대와 고객 창출에 집중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 결정이었다.
수수료 폐지 이후 우려되는 실적은 오히려 더 나아졌다. 2015년 495억 원을 기록했던 회사의 매출액은 이듬해 848억 원으로 71%가 증가했다.
수수료 폐지 발표 이후 주문량과 가맹업소의 수가 크게 급증한 덕이었다. 창업 이후 줄곧 적자였던 회사는 흑자전환에 성공했으며, 작년에 이르러서는 매출 3,192억 원, 영업이익 585억 원을 기록하며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사회적 책임에도 관심이 많은 기업가
초창기 들어야 했던 기술적 진보에 대한 지적에도 우아한 형제들은 슬기롭게 대처하고 있다.
작년에는 5년 뒤 상용화를 진행할 예정인 음식 배달 로봇 ‘딜리’의 개발계획을 발표했으며, 재작년 3월에는 인공지능 투자 프로젝트 ‘배민 데이비드’을 공개하고 100억 원의 투자계획을 밝힌 바 있다.
배달의 민족의 결제 수수료를 포기하는 대신 식품 전반에 걸쳐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올해에는 문화콘텐츠 플랫폼까지 손을 대고 있다.
지난 8월 우아한 형제들은 웹툰 플랫폼 ‘만화경’과 영상 놀이 플랫폼 ‘띠잉’을 선보인 바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배달의 민족을 가게 홍보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자영업자들이 올린 매출은 총 5조 2천억 원으로 집계된다.
막대한 수익만큼 김봉진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경영자로 유명한데, 지난 2017년 10월 그는 3년 동안 사재 100억 원의 기부 계획을 밝힌 바 있으며, 실제로 지금까지 거액의 기부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나가는 유니콘 기업인 우아한 형제들은 지금 모든 스타트업들의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김봉진은 많은 기업가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김봉진 의장 수익금 절반은 사회에 환원한다◎
우아한 형제들은 김 의장이 재산 절반 이상을 사회 환원하겠다고 세계적 기부클럽 '더 기빙 플레지'에 서약했다고 18일 발표했다.
더 기빙 플레지는 2010년 8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과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재산 사회환원 약속을 하면서 시작된 자발적 기부운동이다.
김 의장은 한국인으로는 처음이자, 세계에서 219번째 기부자가 됐다.
김 의장은 서약서에 "저와 저의 아내는 죽기 전까지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한다"며 "이 기부 선언문은 우리의 자식들에게 주는 그 어떤 것들보다도 최고의 유산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라고 강조했다.
기부 결심의 이유로는 "대한민국 아주 작은 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는 손님들이 쓰던 식당 방에서 잠을 잘 정도로 넉넉하지 못했던 가정형편에, 어렵게 예술대학을 나온 제가 이만큼 이룬 것은 신의 축복과 운이 좋았다는 것으로 밖에는 설명하기가 어렵다"며 "2017년 100억 원 기부를 약속하고 이를 지킨 것은 지금까지 인생 최고의 결정이었다고 생각하며 이제 더 큰 환원을 결정하려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교육 불평등에 관한 문제 해결, 문화 예술에 대한 지원, 자선단체들이 더욱 그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 조직을 만드는 것을 차근차근 구상하고 있다"며 "10년 전 창업 초기 20명도 안되던 작은 회사를 운영할 때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의 기사를 보면서 만약 성공한다면 더기빙 플레지 선언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꿈꾸었는데 오늘 선언을 하게 된 것이 무척 감격스럽다"라고 소회를 전했다.
한편, 김 의장은 지난 2017년 100억 원 기부를 약속, 지난해까지 사랑의 열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한의료사회복지사협회 등 재단·협회를 비롯해 월드투게더, 밥퍼 나눔 운동본부, 서울예술대학 같은 NGO, 학교 등에 총 100억 3천100만 원을 기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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