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파운드리 오락가락한 인텔, 이번엔 삼성·TSMC 잡을까
랜디어 카푸르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 대표.
[위클리 반도체] 세계 제1의 종합 반도체(IDM) 기업 인텔이 미국 애리조나주에 200억 달러(약 22조 7000억 원)를 투자해 2개의 공장을 건설하고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 사업을 강화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파운드리 자회사로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IFS)'를 만들고 현 인텔 수석 부사장인 랜디어 카푸르 박사를 대표에 임명했다.
카푸르 신임 대표는 반도체 장비 기업인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에 근무하다 2017년 인텔에 합류한 제조 공정 전문가다.
인텔의 작년 한 해 매출은 778억6700만달러, 영업이익은 236억 7800만 달러로 삼성전자·TSMC를 압도하는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이다.
인텔이 과연 파운드리 사업에서도 삼성전자와 TSMC를 누를 수 있을지 반도체 업계는 바짝 긴장한 모양새다.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을 공식적으로 시작한 건 2012년이다.
인텔은 그해 22나노미터(nm·1nm는 10억 분의 1m)급 공정으로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팹리스)의 주문 생산을 해주는 '인텔 커스텀 파운드리 그룹'을 만들었다.
하지만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은 그다지 확장하지 못했다.
PC용 중앙처리장치(CPU)를 오랜 기간 과점하고 모바일 반도체까지 넘보는 인텔은 다른 팹리스들은 물론 애플과도 갈등이 컸다.
팹리스들은 굳이 자신들의 설계자산(IP)을 들여다볼 권한까지 주면서 인텔에게 반도체 생산을 주문하고 싶지 않았다.
인텔은 2000년대 중반 애플의 아이폰에 들어갈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인 애플 실리콘의 파운드리 계약을 따낼 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텔은 애플의 제안을 거절했고 계약은 삼성전자에 돌아갔다.
아이폰은 스마트폰 혁명을 일으켰고, 삼성전자는 애플의 계약을 기반으로 파운드리 업계의 신예가 됐다.
폴 오텔리니 당시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퇴임하며 "첫 번째 아이폰의 판매량은 우리가 예상한 최대치보다도 100배 이상 많았다.
애플의 제안을 받아들였어야 했다"라고 후회한 바 있다.
인텔은 2010년대 중반 한때 파운드리 사업에서 10억달러가 넘는 매출액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파운드리 사업이 활성화된 것은 아니었다.
대형 팹리스라 할 애플, 퀄컴, 엔비디아, AMD와의 계약은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의 파나소닉과 인텔이 사들인 알테라가 인텔 파운드리 사업의 주요 고객이었다.
인텔 커스텀 파운드리 그룹은 결국 2018년 없어졌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가 23일(현지시간) 온라인 행사를 통해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사업 본격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2021년 현재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을 다시 살려내기로 결정했다.
지난 23일(현지시간)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의 발표를 통해서다.
겔싱어 CEO는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을 통해 새로운 IDM으로 거듭난다는 'IDM 2.0' 비전을 발표했다.
당초 반도체 업계는 인텔이 자사 제품의 파운드리를 삼성전자와 TSMC 중 어디에 맡길 것인가가 이날 공개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발표 내용은 정반대였다.
오히려 삼성전자와 TSMC를 향한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겔싱어 CEO는 이날 "2025년까지 파운드리 시장은 10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며 "아시아에 편중된 파운드리 서비스의 대안을 제공하기 위해 연내 미국과 유럽 등에 추가로 공장 확장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인텔이 200억달러(약 22조 6000억 원)를 투자해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공장 2곳을 새로 지을 미국 애리조나주 오코틸로의 인텔 팹.
인텔은 PC용 중앙처리장치(CPU)와 메모리 시장에서 확고한 시장 지배력을 유지해왔으나 2010년대 중반부터 이런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인텔은 모바일 반도체 시장에서 퀄컴·ARM에 미치지 못했고 이제는 PC용 칩 시장에서도 AMD에 밀리는 양상이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대세가 된 모바일 반도체는 모바일 AP, 통신용 모뎀칩 등이다. 이들은 성능도 중요하지만 '발열'을 잡는 게 핵심이다.
저전력 고효율이어야 한다. 인텔의 모바일 반도체는 성능은 뛰어났지만 저전력이라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이 와중에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아마존 같은 기존 대형 고객들이 반도체 직접 설계에 나섰다.
인텔이 설계한 제품을 써온 고객사들이 우루루 떠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애플은 자사 노트북인 맥북에 탑재할 CPU로 기존에 쓰던 인텔 CPU 대신 자체 설계한 M1을 채택했다.
M1은 영국 ARM의 기본 설계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 온칩(SoC)으로, TSMC의 첨단 5 나노 파운드리 라인에서 생산됐다.
애플은 M1을 작년 출시된 4세대 맥북 에어, 5세대 맥북 프로 등에 처음 장착했으며 앞으로 제품군을 늘릴 계획이다.
이제 인텔로선 파운드리라는 신성장 동력이 절실해졌다.
겔싱어 CEO는 "인텔은 고객들이 신뢰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반도체, 패키징 및 제조 과정을 갖춘 유일한 기업"이라며 "전 세계를 위한 지속적이고 안전하게 반도체를 공급하면서 폭발하는 수요를 충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만큼 대형 고객사들에 인텔의 파운드리 역량을 어필하겠다는 의지다.
파운드리 사업은 풍부한 반도체 IP와 막대한 설비 투자가 성공의 필수 조건이다.
반도체의 종가라 할 인텔은 CPU부터 통신·서버 반도체, 사물인터넷(IoT), 메모리까지 방대한 IP를 수십 년간 축적해왔다.
또 실리콘밸리에서 퀄컴·AMD·엔비디아 등 대형 팹리스들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인텔에게는 또 다른 지원군도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반도체 자국 생산을 강조하는 미국 반도체 굴기를 천명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자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을 적극 지원하는 것은 물론, 자국 팹리스들이 인텔에 일감을 몰아주도록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애플·퀄컴·엔비디아·AMD 등 파운드리 업계 4대 고객사는 물론 MS·아마존·IBM 같은 현지 대표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인텔에 파운드리를 맡길 수 있다.
이미 MS와 IBM이 인텔의 파운드리 선언과 함께 협력 계획을 공개한 상태다.
인텔은 "IBM과의 협업은 생태계 전반에서 반도체 제조 혁신을 가속화하고 미국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제고하며 미 정부의 핵심 이니셔티브를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라고 강조했다.
공정 기술면에서도 인텔은 삼성전자가 무시할 수 없는 상대다.
인텔은 현재 14나노급 공정 기술의 상용화 이후 차세대 공정에서 속도를 내지 못하며 삼성전자와 TSMC에 뒤쳐졌다.
삼성전자와 TSMC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5 나노 이하 첨단 공정을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인텔의 14 나노 공정만 해도 삼성전자와 TSMC의 10 나노급 공정과 맞먹는 성능을 내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텔이 계획대로 빠른 시일 내 7나노 공정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5 나노 이하 초미세공정 수준에 도달한다면 기존 파운드리 업체들에게 큰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겔싱어 CEO는 "7 나노 공정은 잘 준비하고 있다"며 "극자외선(EUV) 기술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ASML과도 협력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파운드리 시장은 삼성전자·TSMC '2강(强)'과 기술 격차를 좁힐 수 없는 나머지 기업으로 구성돼 있다.
매출액으로 보면 TSMC가 지난해 442억달러로 전체 시장(846억 달러)의 절반을 차지한다.
삼성전자는 140억 달러로 약 17%를 점유하고 있다.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이 단기간에 기술 격차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우선 인텔의 7나노 반도체 공정은 일러도 2023년에서야 양산이 가능할 전망이다.
허염 한국 시스템반도체 포럼 회장은 “파운드리 사업은 기본적으로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서비스 비즈니스로 인텔은 이에 대한 경험이나 마인드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면서 “CEO까지 직접 나섰지만 자사 제품의 생산을 최우선으로 하는 조직문화를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본부장 역시 “모바일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에서 IDM으로서의 강점을 얼마나 활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기존 파운드리 업체와의 기술격차를 줄이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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